낙안 민속마을
진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날 귀가하는 길에 장마기간 중이라 비가 많이 왔지만, 우리들은 핸들을 돌려 낙안 민속마을에 들리다.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읍성들 가운데 보존이 가장 잘된 곳으로 특히 성안에는 전통적인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고 고려 후기에 왜구의 잦은 침입이 있어 조선 태조 6년에 흙으로 쌓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그로 1423년부터 여러해에걸처 돌로 다시 쌓아 성의 규묘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전체의 모양은 사각형으로 1,410m이고 동.서.남쪽 3곳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서로 연결된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4군데의 치성이 성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성안에는 100여가구의 민가들이 있는데, 보통1가구당 2∼3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구성되어 있고, 초가집들은 3칸,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농기구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겸용하는 헛간채와 재래변소로 이용하는 잿간으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 따라 전통적인 마을로 모습이 변형되기 시작하고, 성의 일부가 자연적으로 붕괴 유실됨에 따라1983년 사적으로 지정하고 읍성의 종합적인 보존사업을 시작 하였다, 특히 주민들이 살든 초가집 가운데 보존가치가 가장높은 9동은 중요 민속 자료로 지정 하였고 일부 변형되거나 낡은 집들은 복원 수리 하였고 한다.
관청처에서는 관아와 객사 주변의 담장. 휠대. 삼문등을 발굴.복원하고 성곽과 문류등을 복원 하였다, 여러 성씨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중앙에는 선정을 베풀었던 군수 임경업(1594∼1646)의 선정비가 있는데, 지금도 그의 영혼이 이 마을 수호한다는 전설이 있어 매년 정월보름에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동문밖 읍성의 입구에는 낙안 향교가 있어 예전에는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 했으나 당시의 풍습과 생활 문화를 젊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자료 : 마을 입구 당국에서 적은 입간판을 보고. 아래탑 사진이 민속 마을 입구에 있었는데 거저 탑이 좋아서 담았는데 나오면서 보니 사진을 뒤면에서 담았기 때문 무엇인도 몰랐는데, 전면에서 보니 3.1운동 기념비라고 새겨있다.
선정을 베풀었던 군수 김경업의 선정비.
성곽 안 그네
이곳은 죄인들이 문초를 당하던 사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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