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가우디 성당과 구엘공원
할멈이 남창원농협주부대학 회장단에서 스페인, 포르투칼 여행을 2018. 4. 9~4. 16까지 일주일 동안 다녀왔는데, 내가 직접 안 다녀와 블로그에 올리려니 어디가 어딘지 몰라 안 올리려다가 130여 장의 사진을 담아와 올려본다.
인천공항에서 2018. 4. 9. 00 : 45에 출발, 카타르 항공사 소속의 항공기에 몸을 맡겨 10시간 35분 동안 운항 끝에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내려 거기서 3시간 10분 동안 기다려 현지시간 오전 8시 10분 바르셀로나로... 7시간 50분 동안 운행 끝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다. 비행시간만 18시간 25분. 도하에서 환승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이 3시간 10분 도합 21시간 35분 동안 스페인 가는데, 지루한 탑승으로 인해 얘를 먹었다나?
스페인여행 1일차 2018. 4. 9 (월)
여행사에서 계획된 일정을 옮긴다.
★ Antoni Gaudi Special (안토니오 가우디 성당 관람)
★ 바르셀로나 관광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교회 내부관람
★ 구엘공원 내부관람
★ 카사바트요 외부관람
★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에서 등장한 로맨틱한 까탈루냐 음악당 외부관람
★ 람브라스 거리
아마도 가우디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린 건축물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즉 성가족 성당일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이미지에는 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모습이 포함되기 마련인데, 그 규모가 워낙 크고 계획도 현대 건축물답지 않게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1-2년이면 건물을 ‘뚝딱’ 짓고 삼십 년 된 아파트는 당연히 헐어 버려야 마땅한 퇴물 취급을 하는 우리의 풍토와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더욱 인상적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유럽의 성당 중에는 짓는 데 몇 백 년이 걸린 곳이 허다한데,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고 현재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글/다음백과/최경화>
1883년, 한 독실한 가톨릭 단체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신자들의 모금으로 가우디에게 성당 건축을 맡겼다. 한 해 전에 다른 건축가가 처음 설계를 시작했던 것을 이어받았는데, 이 작업은 가우디가 1926년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 이후에는 다른 건축가들이 넘겨받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의뢰받은 다른 일과 함께 진행해 오다가 1914년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만 매달렸으며, 심지어 성당 옆에 숙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일하며 살기까지 했다. 가우디는 본인이 살아 있을 때 성당 건축이 마무리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내가 성당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 않다. 난 늙을 테지만 내 뒤를 다른 사람들이 이어갈 것이다. 작품의 정신은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작품과 함께 살아가는 세대의 것이다. <글/다음백과/최경화>
1926년, 그는 전차에 치여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3일 후에 사망했다. 그가 눈을 감은 병원은 루이스 도메넥 이 몬타네르라는 또 다른 모데르니스모 건축가가 설계한 산타 크레우 이 산트 파우 병원(Hospital de la Santa Creu i Sant Pau)이었다. 이곳은 가우디가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그의 유해는 성당 안에 묻혔으며 병원에서 성당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글/다음백과/최경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 도착하면 누구나 높이 솟은 탑에 눈길을 빼앗기게 된다. 직육면체도 원통형도 아니고, 꼭짓점이 뾰족하지도 않은, 타원형을 아주 길게 늘여 놓은 것 같은 탑이다. 예수의 열두 사도들에게 봉헌되는 열두 개, 복음서 저자들을 위한 네 개,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씩 해서 모두 열여덟 개의 탑이 지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글/다음백과/최경화>
건물의 동쪽, 그러니까 연못이 있는 공원 쪽에 가까운 곳이 가장 먼저 지어 올리기 시작한 ‘예수 탄생’ 파사드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오는 수태고지 장면, 예수 탄생 장면, 동방박사와 목동이 경배하러 오는 장면 등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이 파사드 위의 탑 네 개 중 우리가 보기에 가장 왼쪽에 있는 탑이 성 베르나베(사도행전의 바르나바)에게 봉헌된 탑인데, 가우디가 살아 있을 때 유일하게 완성된 탑이라고 하며 높이는 100미터에 이른다. <글/다음백과/최경화>
구엘공원
안토니 가우디의 오랜 후원자이자 사업가, 작가, 정치가였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은 쾌적한 환경의 주택단지를 만들고 싶어 했다. 산 밑의 땅을 사서 가우디에게 계획과 설계를 맡겼는데, 영국식 정원의 형태로 자연과 어우러지게 길을 만들고 부지를 나누어 주택을 짓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설을 만드는 식이었다.
총 60개의 부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당시 가격에 비해 약간 비싸기도 했지만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 때문에 두 부지만 분양이 되었다. 이 두 집 중 하나가 지금 가우디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이고, 나머지 하나가 카사 트리아스(Casa Trias)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역은 공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14년에 공사가 중단되었고, 1918년에 에우세비 구엘이 사망하면서 이후에 그의 상속자들이 이곳을 바르셀로나 시에 판매하여 1926년에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글/다음백과/최경화>
구엘 공원의 주 정문으로 들어가면 모자이크로 만든 도마뱀 분수가 있고, 그 뒤에는 살라 이포스틸라(Sala Hipóstila)라고 불리는 공간이 있다. 여러 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데 이 천장 가장자리의 난간은 위에서는 햇볕을 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된다.
이곳은 장이 선다거나 모임이 열릴 수 있도록 설계된 장소이기도 하지만 기능적인 면으로 볼 때는 물을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으로 내린 비는 가운데가 뚫린 기둥을 통해 아래로 흘러내린다. 배수로 역할을 하기도 하는 기둥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기둥 밑바닥에 설치된 저수 창고에 모인다.
로마시대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가우디가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돌기둥이 세워진 산책로 역시 최대한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나무 모양처럼 만들었는데, 부지를 닦을 때 나온 돌을 활용한 것이다. <글/다음백과/최경화>
가우디성당
https://www.youtube.com/watch?v=-qLi8Zz0Wp8
출처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구엘공원
https://www.youtube.com/watch?v=SpWIE4ru_S0
출처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