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정치는 오랫동안 좌우, 혹은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의 틀에 묶여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에 대화와 타협은 없고 적대적인 대결만 판을 치고 있다. 5·16, 유신, 인혁당 재판이 언제 적 일인데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오늘의 우리 삶에 정말 절실한 문제인가. 지난 정권에서 과거 청산을 그렇게 하고도 아직 또 남았는가. 왜 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과거가 유령처럼 다시 나오는가. 정치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이미 과거를 극복했다. 이 나라는 세계가 인정하듯 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있다. 얼마 전 세계 신용평가 기관들은 우리의 신용등급을 일본·중국과 비슷하게 평가했다. 경제 역시 세계 2위, 3위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됐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여당 후보 스스로가 이번 과거 논쟁의 판을 키워 놓았다. 잘못된 일은 반성하고 잘된 일은 기리자고 말했으면 진작 끝날 일이었다. 이런 수준의 말조차 하기 어려웠다면 역사 인식이 없는 것인가, 아집 때문이었는가. 야당 후보는 기회만 되면 과거를 헤집고 있다. 그것으로 분열이 극대화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만 참배한 그에게는 나머지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이 아닌 것이다.
이런 것을 풀어보겠다는 것이 안철수의 출마 이유다. 정치를 바꾸어 보겠다는 것이다. 지금 여야는 진지를 쌓고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아대고 있다. 총탄이 쏟아지는 양 진지의 가운데에 서서 싸움을 멈추자고 외치는 사람과 그는 비슷하다. 그 외침을 듣고 양쪽 군인들이 진지에서 기어 나와 서로 얼싸안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는 이승만, 박정희 묘역까지 골고루 돌았다. 정책에서도 성장과 복지, 안보와 평화의 균형을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문제는 그 옳은 말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다. 여론조사 결과처럼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정책은 국회의 지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의 이상을 실현시키자면 국회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친박, 친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지금 같은 정치 상황이라면 그는 여야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리 되면 국정은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 줄 의무가 있다.
지금 같은 정치 틀이라면 해답이 없다. “조직도 세력도 없는 만큼 빚진 것도 없다”는 그의 말은 맞다. 그것으로 기존 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양당에 매이지 않고 인재를 골고루 쓸 수 있다. 경쟁했던 대통령 후보들까지도 함께 국정에 참여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도 있고, 선거 후 박근혜-안철수, 안철수-문재인의 연합이 가능할 수도 있다. 세 후보가 만나 누가 당선되더라도 서로 국정운영에 협조한다는 약속만 받아내도 엄청난 선거혁명을 하는 것이다. 그런 힘으로 통합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발상이라면 선거 전에 야당만이 아니라 여당과도 단일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 그의 정책을 보면 야당보다 오히려 여당과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 구조나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꾸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한 개인이 단숨에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정치가 아무리 구정물이라 하더라도 한번에 쏟아버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새 정치 실험은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가 해야 할 최소의 의무는 비록 이번에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에 발을 담그고 꾸준히 그 일을 해내어야 한다. 그것이 그의 약속이었다. 그 길은 길고 험한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을 한 이상 그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