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포르투칼 여행 4일차 2018.4.12 (목)
알함브라 궁전을 뒤로하고 론다로 이동하여 계곡위에 세워진 하얀집의 론다 구시가지를 관람하다.
모두투어에서 계획된 일정을 여기 또 옮긴다.(직접 안 다녀와서)
★ 계곡위에 세워진 하얀집의 론다 구시가지 관람
★ 누에보 다리
★ 론다 투우장 외부관람
★ 알바이신 지구의 언덕 (전경 조망)
→세비야 로 이동
★ 세비야 대성당 내부관람
유럽 3대 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댁양식의 대성당
★ 히랄자 탑
★ 황금의 탑
★ 스페인 광장 & 마리아 루이사 기념공원.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 주, 론다 산맥
말라가 시 서쪽의 론다 산맥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은 엘타호데론다 계곡이 도시가 자리잡은 두 구릉을 가르고 있는데 계곡으로 과디아로 강의 지류인 그란데 강이 흐른다.
다리가 계곡에 여러 개 가로질러 있으며 특히 1761년에 건설한 높이 90m의 아치형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원래 고대 이베리아인이 거주했던 장소이고 로마 시대에는 아키니포로 알려져 있으며, 8~15세기에는 무어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유적과 무어인 유적 가운데 로마식 극장과 전쟁 때 물 봉쇄를 막기 위해 무어인이 만든 도시에서 강에 이르는 지하 계단(1911 복원)이 있다.
1485년 5월 20일에 로마 가톨릭 군주들인 페르난도와 이사벨라가 정복하여 되찾았다.
포도와 곡물 등의 농산물 교역중심지이고, 밀가루·가죽·브랜디·옷·초콜릿을 생산한다.<출처 백과사전>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말라가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전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헤밍웨이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곳 론다에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안달루시아의 꽃이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마을 론다는 과달레빈강(Río Guadalevín) 타호 협곡(El Tajo Canyon) 위 해발 780m 고지대에 세워진 절벽 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론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경기 중 하나인 투우인데, 말을 타고 창으로 찌르던 전통 투우 방식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 천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방식의 투우를 창시한 곳이 론다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낭만적인 협곡 도시 론다는 산책하듯 둘러보면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누에보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에 있는 첫 번째 골목을 따라가면 캄피요 광장(Plaza del Campillo)이 나오고 광장 오른쪽 끝의 전망대까지 가면 누에보 다리와 협곡 위에 자리잡은 론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출처 백과사전>
아르코스 델라 프론데라에서부터 말라가 북쪽 그라살레마 산맥을 거쳐 론다까지 이어지는 일대의 하얀 마을을 통틀어 ‘푸에블로 블랑코’라 부른다. 무어인들이 안달루시아에 정착하면서 평지보다는 깊은 산속 꼭대기나 가파른 협곡 위 등 요새화되어 있는 장소를 선호했다. 그래서 안달루시아 지방은 산맥 깊숙한 곳까지 하얀 회벽을 칠한 무어인들의 전통적인 흔적을 간직한 하얀 마을들이 비밀의 도시처럼 숨겨져 있다. 푸에블로 블랑코는 하얀색 회벽을 칠한 것 외에 스페인의 붉은 기와로 지붕을 올리고, 집의 높이는 낮게 하고, 길바닥엔 조약돌이 깔려 있으며 미로와 같은 골목들 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가톨릭 군주들의 국토 회복 운동이 성공하면서는 무어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마을의 가장 높은 위치에 가톨릭의 상징인 성당이 지어지게 됐다.
푸에블로 블랑코를 구분 지어 나누기는 모호하지만 코스타 델 솔의 지중해 해안과 마주하고 있는 하얀 마을들은 이슬람의 영향이라기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하얗게 칠한 하얀 마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의 산토리니가 그 대표적인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백과사전>
세비야 대성당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르네상스 양식), 영국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네오르네상스 양식)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고딕 양식 성당 중에서는 세비야 대성당이 가장 크다. 1401년 성당 참사회의 “그 어떤 다른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해야 한다.”라는 결정으로 무조건 톨레도 대성당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짓기 시작해 105년 후인 1506년에 완공된 세비야 관광의 핵심이다. 대성당 종탑인 히랄다 탑은 오렌지 정원과 함께 유일하게 남은 12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사원의 한 부분이다. 17~18세기에 들어와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추가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기도 하다.<출처 백과사전>
콜럼버스의 묘(Sepulcro de Colón)
스페인 정부는 콜럼버스가 세운 공을 인정하여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라’라는 그의 유언을 지켜 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4대 왕국이었던 카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의 4명의 왕들이 그의 무덤을 짊어지게 했다. 앞에 있는 카스티야, 레온 왕국의 왕들은 고개를 들고 있고, 뒤에 있는 나바라, 아라곤 왕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것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지했던 왕은 고개를 들도록, 반대했던 왕은 고개를 숙이도록 한 것이란다. 그리고 오른쪽 레온 왕의 창살 아래에는 그라나다를 뜻하는 석류가 꽂혀 있는데 국토 회복 운동으로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들이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장이 해당 왕국을 의미한다. 오른쪽 레온 왕의 발과 왼쪽 카스티야 왕의 발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이것은 이들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세비야에 다시 온다는 속설과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다.<출처 백과사전>
네 명의 왕들이 관을 떠받치고 있다. 그 관 안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대탐험가 콜럼버스가 영면하고 있단다.
그 네 명의 왕들은 그 당시 스페인을 통치하고 있던 카스티아와 아라곤 그리고 나바라, 레온의 왕들이다.
그런데 앞에는 고개를 들고 서 있는 두 명의 왕과 뒤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두 왕이보인다.
앞의 두 왕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지지해 줬기 때문에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고
뒤의 두 왕은 콜럼버스를 지지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관을 땅에 두지않고 공중에 떠받치고 있는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신대륙 탐험의 꿈을 중도에서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콜럼버스는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단다.유언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 묻혀있던 그의 유해를 수세기를 지나 스페인으로 가져 왔지만
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관을 땅으로 부터 띄어 놓았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은 콜롬버스의 둘 째 아들인 페르난도의 묘라고 한다.
그는 아버지 콜롬버스를 따라 탐험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글로써 남겼다고 한다.
그 앞에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3세와 알폰소 1세 의 묘가 있다고 한다.
동영상길이 3분 20초
https://www.youtube.com/watch?v=hOBwnaA3t6o
출처 KBS걸어서 세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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